영화비평은, 영화와 대중 사이에 의미의 다리를 놓고, 대중이 미처 건너지 못한 간극을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이 입장에 동의하는 바인데요. 하지만 때로는 비평이 영화에 지나친 살을 붙이는 것은 아닌지, 영화에 의미의 모래주머니만 주렁주렁 매달아
지나친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될 때도 있습니다.
오늘 제가 데드풀에 대해 쓸 글이, 그런 일을 범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만.. . 아무튼 써 보려고 합니다.
<데드풀2>은 재밌다
물론 이 영화를 정말 재미없다고 느꼈던 관객들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대중적 취향이라는 것은 확실히 존재하지만,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마블영화 전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반감과 비난은 모두 정당합니다. 이 영화는 잔인하고, 상당 부분 마블 세계관에 기대고 있기에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전혀 재밌지 않을 수 있으며, 캐릭터가 굉장히 강해 호불호를 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데드풀을 정말 재밌게 본 관객들도 많습니다. 제가 그 중 하나입니다. 저의 경우 영화를 통해 크게 두 가지 재미를 느끼는데요. 하나는 영화를 보며 그 상황과 대사에서 유발되는 재미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가 던져준 여러 생각할 거리들을 추후에 분석할 때의 재미입니다. 이 영화는 그 둘을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데드풀의 '재미' 에 대한 분석은 전적으로 저 자신이 느낀 재미에 대한 분석입니다. 그러나, 이 글이 일기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작가도 자신의 배경을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전문 작가가 아니지만, 하나의 대중으로서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가지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 이 영화를 보는 도중에 느꼈던, 감상 과정 자체에서 유발된 재미의 원천은 크게 두가지 였습니다.
(1) 데드풀의 헛소리들
: 헛소리라고 말하는 것은 열심히 쓰였을 데드풀의 대사들을 폄하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의 장난, 과장, 디스가 뒤섞인 허구로 가득찬 말들. 어떤 상황에서도 진지해지지 않는 그의 발언들은 그를 영화 속에서나 밖에서나 개그맨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개그맨의 개그를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죠. 분명히 호불호를 띠는 헛소리들입니다. 이 헛소리들이 북미를 넘어 이쪽에서도 먹히는 현상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얘기해 보겠습니다.
(2) 몰입을 방해하는 순간들
: 데드풀의 능력은 '제 4의 벽'을 뚫는 것이라고 하죠. 이는 그가 작품 속의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작품이라는 벽을 넘어 감상자와 소통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영화에서도 그 설정이 그대로 유지되어, 그는 '이게 복선이다' '이제 cg 전투가 시작된다' 등 관객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그는 라이언 레놀즈로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는 여러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원작 설정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영화와 캐릭터를 하나의 닫힌 소우주가 아닌 누구나 침투 가능한 구성물로 설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순간들은 일차적으로 어이없음을 유발하고, 그것이 하나의 웃음 포인트가 되는 것이죠.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웃음 포인트는 (2)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학자는, 영화를 다른 예술장르와 다르게 감상자와의 거리를 무화하는 매체라고 정의했습니다. 영화를 보며, 그 속에 깊이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캐릭터와 공명하고, 서사를 따라가는 경험을 모두 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영화의 힘이고, 영화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데드풀>은, 그러한 감상 방식을 방해합니다.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그들이 무언가를 '감상'하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그것이 어떤 전통적, 관습적인 공식을 따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개입과 방해가 재밌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감상의 흐름을 방해당한 것인데도 말입니다.
일차적인 이유는, 새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가 처음은 아니지만 분명히 독특하고 많이 시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관객은 일정 부분 새로움을 느끼고, 참신함에서 즐거움을 느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그것이 복선이고 이것이 cg인 것을 관객이 모르는 바가 아니죠. 이미 공식화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한번 더 짚어 줌으로써, 유머의 한 종류인 셀프디스에서 느껴지는 재미와 비슷한 것일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좀 더 들어가 보면, <데드풀>은 스스로 관객과의 거리를 조절합니다. 영화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데드풀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관객을 서사에서 밀어내고 당기기를 반복합니다. 우리에게 영화를 본다는 것, 영화관에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할리우드 히어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점령한 영화를 보는 것은 빠질 수 없는 데이트 코스이며 가족의 외출이죠(<데드풀>은 19금이긴 하지만). 이런 반성 없는 행위인 영화감상을 새로운 것으로 만들게 한다는 점에 데드풀의 독특함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은 다른 영화의 감상과 완전히 다른 행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느껴지는 재미가 이 영화의 다른 문제점을 덮는 것은 아닙니다. 쉴새없이 욕을 뱉어내고 마블의 세계관의 장악을 강화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떤 사람에게는 <데드풀>이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지루하게 했다는 점에서, 허무맹랑한 주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너무나 대중적이고 어쩌면 진부한 스토리라인을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 히어로영화와 가상의 세계 - 마블 시리즈를 비슷한 오늘날 SF영화, 히어로 영화들은 화려한 CG를 바탕으로 마치 진짜 건물이 무너지고 세계가 조각나는 듯한 연출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교한 연출, 마치 현실처럼 믿게 만드는 연출은 아이맥스와 4D 등 기술에 의해 관객에게 더욱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우리는 가상을 현실처럼 즐기기를 원합니다. 영화는 그러한 대중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많은 자본과 기술을 투자합니다. (그만큼 거하게 망할 확률도 높아지지만요) 점점 더 높아져가는 대중의 눈, 그리고 그것에 부합하는 결과물은 대중에게서 '영상미'라는 찬사를 받으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데드풀>은 , 관객에게 '당신들이 보고 있는 것은 대부분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 전형적 서사를 따르고 있는 히어로영화다' 라고 말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알려줍니다. 그러한 포맷에 대한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영화가 대중에게 그것을 스스로 말한 것은 최초는 아니더라도 처음에 가까운 시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기서 대중은, 히어로영화와 가상의 세계를 어디까지, 언제까지 지금처럼 감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 웃음코드에 대하여 : 어느 문화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을 배꼽 빠지게 웃게 하는 것들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 있죠. 인간은 문화적 동물로,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의미의 그물 속에서 사고합니다. 그런데 <데드풀>의 많은 대사가 한국인을 웃게 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형성된 유머코드가 세계적으로 동질화되고 있음의 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아도르노가 문화산업의 '동일화'에 대해 지적한 이래로, 문화산업으로서의 영화의 힘은 점점 커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웃음의 기준이 동질화되는 것은 우리가 점점 더 많은 코드와 담론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데드풀2>는 히어로물의 공식을 뒤집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등극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아무도 죽지 않고 악은 파괴되고 가족, 의리..그런 것들이 승리하는 히어로물의 공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 제 4의 벽을 깨는 능력을 가진 이 히어로는 (의도했든 의도되지 않았든) 오늘날의 영화감상이라는 '관습' 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줌으로서 감상에 새로운 리듬을 부여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시도이고 의미있는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데드풀 쓰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데드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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