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 (Doctor Strange, 2016)
개봉한지 2년이 되어가는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냥 제가 최근에서야 봤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여러가지 할얘기들이 많은,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자라지만 한번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대중의 반응은 대부분 '영상미'가 뛰어나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토리와 캐릭터에 대한 호평들도 많았지만, 대체로 화려한 CG, 영상미가 '모든 것을 씹어먹는다'(네이버 영화 prsi****)는 류의 평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빈약한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네이버 영화 평점) 관람객평점이 8점을 넘어서게 한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시각 디자인'(한 평론가)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만화적 상상력의 공간을 실물로 옮겨낸 그래픽의 힘은 사람들에게 영상미를 경험하게 합니다.
'영상미'
관객들은 영상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다른 비판점에도 '불구하고' 영상이 아름답기에 볼 만 하다며 높은 평점을 주곤 합니다. 일상적인 용어가 되어버린 이 영상미란 대체 무엇일까요?
영상미에 대해 파고들자면 가장 먼저 마주해야할 문제는 '미' ,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저도 공부가 부족한 터라 깊이 들어갈 수는 없지만, 옛부터 철학자들른 이 단어의 지나친 주관성에 의문과 염려를 품으며 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학의 한 영역입니다. 아무튼 여러 천재들이 미에 대한 다양한 기준들을 제시해 왔지만 오늘날에도 아름답다는 말은 극도로 주관적으로 사용되고 있지요 . 어쩌면 그게 정답일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오늘날 이야기되는 영상미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떤 영화, 어떤 영상을 영상미가 뛰어나다고 하는가?" 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을 주기란 하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다른 문제로 넘어가 봅시다. 관객이 말하는 영상미란 무엇일까요?
'영상미로 유명한 영화'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저에게 먼저 떠오른 것은 데미안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 입니다. 할리우드의 여러 풍경과 원색적 색채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란 드레스와 남청색의 해질녘, 푸른 물, 그리고 city of stars~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이때의 영상미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의 영상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라라랜드가 만들어낸 영상미는 색채와 음악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닥터>에서 관객들이 이야기하는 영상미는 기술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법에 관한 만화적 상상력이, 마치 현실처럼, 사람들의 눈 앞에 펼쳐지게 만드는 컴퓨터그래픽의 힘에 많은 사람들이 놀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영상미는 회화적인 인상이나 사진의 아름다운 구도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에서만 느껴지는것이 아닙니다. 사진과 회화의 연장선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영상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이 영상미가 되었습니다.(사실 단어 자체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함께 재생되는 음성도 포함될 것입니다. 음악을 비롯한 사운드효과는 관객의 경험을 증폭시키기 마련입니다.
관객들이 영상미에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캐릭터 묘사와 일정한 텍스트, 그리고 편집을 통해 특정한 주장을 하고 있는 영화에 대해, 그 다른 모든 요소들을 배제하고서라도 영상미 때문에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아주 다방면의 접근이 필요한 복잡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짧게나마 제 생각을 적어보자면,
(1) 대중문화로서의 영화와 '예술'관의 연관성 : '미' 만큼이나 '예술' 역시 모호하고 논쟁적인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대상이 예술인지 아닌지, 아름다운지 아닌지에 대한 격한 토론을 벌이곤 합니다. 그러한 논쟁성 자체가 예술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논쟁적이든 어쩌든 '예술'은 아직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분류적 의미와 평가적 의미가 완전히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즉, 어떤 대상을 예술이라고 명하는 순간 그 대상의 가치와 그것을 전유하는 사람들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어떤 대상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보이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담지하고 있다는 생각. 이것은 단지 대상을 분류하려는 분류적 의미와 대상에 대한 가치판단이 포함된 평가적 의미가 예술이라는 단어에서 구분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 대형 영화관 스크린을 몇 개씩 차지하는 영화들의 경우는 어떨까요. 일단 이 작품들은 모두 '영화'입니다. 영화가 발달한 초창기에, 이것을 사진이나 회화, 문학처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대우'하려는 많은 학자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영화예술가'로 불린 작품들이 만든 영화들은 오늘날도 그 의미와 영상의 가치가 회자되곤 합니다. 그런데 모든 영화가 예술일까요? 판에 박힌 스토리라인이 반복되고 단지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영화가 쓰인다면, 그것은 예술로서 취급받으며 사람들의 분석을 유도하는 대상이 되기에 자격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예술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을 접한 후에야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의 머리 속에 성립된 '영화=예술'의 공식은 (그것을 폄하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꽤 굳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껴지는 영상미가 영화를 평가할 때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술=아름다움'의 공식 역시, 아직은 깨기 어려운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2) 이미지에 대한 갈구 : 오늘날 우리는 이미지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때 이미지란, 사람들의 머리 속에 그려지는 '상(像)' 이 아니라, jpg, png 파일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달로 이미지의 제작, 교환, 전송이 용이해진 오늘날 사람들은 글을 찾지 않습니다. 사진이나 그림 없는 글은 잘 읽히지 않습니다. 뉴스도 점점 이미지가 핵심이 되었습니다. 한번에 읽기 편한 카드뉴스 형태가 보편적인 것이 되었죠. 우리는 이제 이미지에 익숙하고, 지속적으로 이미지가 공급되기를 원합니다. 이때, 고자본 고기술이 투입되는 오늘날의 영화산업에서의 결과물은 가장 첨단을 달리는 이미지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돈을 내고 최고의, 최신의 이미지를 사는 것입니다. (또는 예술을 소비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기도 합니다) 때문에 뛰어난 영상미, 즉 화려한 앵글과 CG는 영화를 보는 목적에 부합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평가하는데 우선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닥터>는 대중들에게 영상미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2016년의 관객들은 꽤나 놀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놀랄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공간이 뒤틀리고 조각나고 차원이 나뉘는 만화적 상상이 눈앞에서 실제 상황처럼 펼쳐졌으니까요. 만화를 보면서 '그것이 현실에서는 어떨까?' 라고 상상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잘 만들어진 상상, 또한 어느 관객평에 의하면 '갈려나간 그래픽디자이너'들에 의해 우리 눈 앞에 제공되니까요. 그리고 마치 그 잘 만들어진 세계 속에 있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거대한 스크린과 사운드효과까지. 그런데 어느 평론가는 이 영화가 여러 편의 영화들을 떠올린다고 평가했습니다.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그래픽이라는 것이지요. 이제 히어로물/SF영화들이 나아가야 할 곳은,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는 컴퓨터그래픽의 영역이 된 것일까요. 서사의 매끄러움과 시사성은 아무래도 상관 없게 되었습니다. 아니면, 영화가 아무리 특정 인물형과 사회를 비판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대중의 예리함이 작용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상미 뒤에 가려진 것
우리는 이 모든 영상미 뒤에 가려진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한 관객은 '오리엔탈리즘과 화이트워싱을 영상미가 모두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영화를 보시오'라고 혹평하기도 했습니다. 핵심 인물 중 한명인 에이전트 원은 만화원작에서 동양인이었으나, 영화에서는 백인 배우가 연기합니다. 일종의 문화적 전용의 문제가 제기된 것입니다. 마법의 중심지인 '네팔 카마르-타지'의 가장 강력한 중심 인물 자리에 서양인을 꽂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동양인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같이 인종적 문제가 민감한 시대에 MCU가 그것을 고려하지 않았을리는 없지요. 캐릭터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연기력과 전달력이 보장된 배우를 선택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는 확실히 '주술적(비과학적)이고 신비한 동양'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술이 아닌 첨단 의학으로 사람을 정확하게 살려내는 의사가, 의술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사용하는 주술의 세계를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이때 찾아간 동양 네팔은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오리엔탈리즘을 마주하는 백인들의 자세 또한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과학에 대한 맹신과 오만함, 비과학적인 모든 것에 대한 조소로 무장한 인물을 대표합니다. 'Magic'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느냐는 태도로 일관합니다. 그러나 곧 마술의 엄청난 힘을 알게 되고 수련에 정진하여 마법으로 세상을 지킬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MCU의 태도는 , 이 모든 것을 웃고 넘어가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이고 마술이고 다 말도 안되는 거 어짜피 다 아니까, 그런 세계라고 생각하고 웃고 넘어가보자는 나름의 유머. 그러니까 동양에 대한 일반화, 문화적 전용이 자신들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마블 원작이 해낸 것이고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영화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MCU의 역할은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 즐거움의 세계에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임은 알고 있다는 듯 약간의 해학을 담았습니다.
문제는 이 세계관의 엄청난 영향력입니다. 시대의 히어로물을 필요로 하는 현대인에게, 지금의 헤게모니는 마블이 쥐고 있습니다. 엄청난 수입과 또 그 투자로 이뤄낸 화려한 '영상미'의 영화는, 동양인에 대한 희화화와 고정관념을 가리게 됩니다. 뭐가 됐든 마블은 화려하고 닥터스트레인지는 대단하니 된 것이지요. 히어로들이 모두 백인인 것을 비판하기에 조금은 어려운 것은, 마블의 세계를 일군 것도 백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황인'들이 사는 동양을 입맛대로 그려내도록 그냥 둘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말입니다.
나가며
따라서 우리는 대중영화가 '영상미'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즐기면서도, 비판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영상이 주는 도취의 순간 뒤에 남게 되는, 조용히 묻혀버리는 서사들에 대해 비평의 칼을 세우고 있어야 합니다. 모든 순간에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비평은 영화와 대중 간의 거리를 채워주는 글쓰기입니다. 전혀 간격이 없는 영화도 있다고 합니다만, 대중이 빠르게 변화하기에 그 간격은 언젠가는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문화적 슈퍼파워 MCU의 작품들을 주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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