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nie and Clyde>. 1967. 

한글 제목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감독 아서 펜(Arthur Penn). 주연 페이 더너웨이( Faye Dunaway), 워런 비티(Warren Beatty)


아래 글은 로저 에버트(Roger Ebert)의 영화 개봉 당시 리뷰를 번역한 것입니다(1967. 9. 25 작성).


(원문 : https://www.rogerebert.com/reviews/bonnie-and-clyde-1967)




<Bonnie and Clyde>(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진실과 천재성으로 만들어진 작품, 미국영화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영화는 무자비하게 잔인하고, 연민으로 가득하며, 구역질나고, 흥미로우며, 가슴 아프고, 또한 놀랍도록 아름답다. 형용사들이 한데 묶이는 것이 모순으로 보인다면, 지금까지 만들어진 대부분의 영화들이 한 작품 안에서 인간 삶을 총제적으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클라이드 배로(워런 비티 역)와 보니 파커(페이 더너웨이 역)가 그 '인간 삶'을 대표한다. 이들은 은행강도와 살인으로 신문에 얼굴을 싣는 양아치다. 은행을 터는데는 소질이 없으나,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며, 신문 등장하는 것에는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보니는 씹는 식당 종업원이었고, 클라이드는 가석방중인 하찮은 깡패였다. 그런데 이들은 예능인이기도 하다. 범죄자로 이름을 날린  보니는 클라이드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자작시 함께 언론에 보낸다. 자신들을 대공황 시기 암울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의 통쾌함을 선사하는 공인으로 생각한다. 


"굿 애프터눈, 배로 갱이다(Barrow Gang, 보니와 클라이드의 강도단)" 클라이드는 은행에 들어서며 인사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니와 클라이드는, 미국 역사상 이뤄졌던 모든 폭력들을 종합하여 대중매체에 터뜨려준 선구자라고도 있겠다.


아서 (Arthur Penn) 감독한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똑바로, 그리고 무자비하게 겨냥한다. 영화는 명백하게 오락을 목적으로 대중영화이고, 관객은 분명 그렇게 받아들일 것이다. 어린 커플들은 <특공대작전(The Dirty Dozen)>(1967), <타고난 패배자(The Born Losers)>(1967), <지옥의 천사(Hells Angels on Wheels)>(1967)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개봉 당시 미국 10 사이에서 유행했던 B급영화들 -  대하는 것처럼  작품을 보며 영화관 데이트를 즐길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보통의 B 영화들에서 기대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영화에서 폭력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피를 흘리지 않는다(현실성이 없다). 사람들은 총에 맞아 죽지만, 고통스러워 하지 않는다. 살인 장면은 영화 구성에서 내키지 않아도 다뤄져야 요소 같은 것이 되어, 관객들은 그래야 표값을 한다고 생각한다. 섹스신도 마찬가지다. 마치 과자봉지 장난감 같은 것이다. 전혀 쓸모가 없는데도 혹시나 들어있지 않으면 사람들은 사기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는 진짜 사람들이 죽는다. 사람들은 죽기 직전 소름끼치게 괴로워한다. 사람들은 괴로워하기 직전 웃고, 체스를 두고, 사랑을 나눈다. 영화 속 희생자들은 우리가 아는 평범한 주변인들이 되고, 그들이 죽을 때, 객석에서는 전혀 편안함을 느낄 수가 없다. 


이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총에 맞을 , 그들은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난다. 충격적이다. 만화 <Fearless Fosdick>에서의 묘사처럼, 총알은 사람의 몸에 깨끗한 치즈 구멍 같은걸 남기는게 아니다. 총알은 실제로 사람의 살을 찢고 뼈를 뚫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는 살인의열풍시대에 살고 있다. 연쇄살인마 리처드 스펙(Richard Speck, 1966 7 13일과 14일에 8명의 견습 간호사들을 고문, 강간, 살해) 포스터가 팔리고, 뉴아크 소요(Newark Riot, 1967년 뉴아크 백인 경찰의 지나친 흑인 진압에 대한 시위) 당시 경찰 스나이퍼들이 라이프(Life magazine) 표지에 실린다. 폭력은 비인간적인 자질을 요구하게 되었다. 배로 갱은 스크랩한 신문의 구절을 재밌다는 듯이 크게 읽는다. 갱단의 일원인 모스가 총상을 입은 보니와 클라이드를 아버지 집에 데려갔을 , 아버지얘네가 위해 해줬냐? 신문에 넌 이름도 나왔어라고 조소한다. 이것은 유머인가, 비극인가? 


흠잡을 없는 연기. 페이 더너웨이 워렌 비티 이 작품에서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주연급으로 자리잡았다. 갱단의 드라이버이자 수리공인 C.W 모스 역을 맡은 마이클 폴라드는 사람좋은 바보의 유머와, 진실된 감정연기를 선보인다. 보니가우린 은행을 털어라며 갱단을 소개하고 그를 동료로 들이려  , 모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표정과 몸의 움직임은 완벽하고도 기분 좋은 영화적 순간을 만들어낸다. 


또다른 멤버들 배로(Gene Hackman 핵맨, 클라이드 배로의 ) 블랑쉬 배로(Estelle Parsons에스텔 파슨스) 부부는 엉성하고, 단순하며, 선량하기까지 하다. 벅과 클라이드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그들은 오랜만에 만났지만 딱히 말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얼싸안고 장난스럽게 주먹질을 주고받는다. 경찰의 함정에 걸려 갱단이 총격을 받고 벅이 거의 죽음에 이르렀을 , 블랑쉬는 도주하는 갱단의 안에서 미친 듯이 높게 울어 제낀다. 이는 나에게 지옥의 적확한 묘사로 느껴진다. 


이것은 단연코 올해(1967) 전미 최고의 영화이다. 또한, 기념비적이기도 하다. 후에 분명히 영화는 1960년대의 슬픔과 유머, 그리고 공동체가 겪어온 것들을 낱낱이 보여주는 최고의 영화로 자리잡을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1930년대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어느 시점이든 선택할 있고, 중요한 것은 지금의 우리에 대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